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1960년대 미국의 NASA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세 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과학 영화가 아니라,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뚫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여성들의 용기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되짚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흑인 여성의 존재감, 숨겨졌던 '히든 피겨스'
영화의 주인공은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그리고 메리 잭슨이라는 실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NASA의 우주 프로그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제목이 '히든 피겨스', 즉 '숨겨진 인물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은 흑백 분리 정책, 즉 '짐 크로 법'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버지니아 주와 같은 남부 지역에서는 공공시설은 물론, 직장에서도 흑인과 백인을 철저하게 구분했습니다.
영화 속 캐서린이 백인 건물까지 수 킬로미터를 달려가 화장실을 써야 했던 장면은 단지 극적인 연출이 아닌, 당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캐서린은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인정받아 결국 존 글렌의 우주비행 궤도를 계산해내고, 도로시는 IBM 컴퓨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하여 흑인 여성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합니다. 메리 역시 법정 투쟁 끝에 NASA의 엔지니어 자격 요건을 충족하며,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영웅담을 넘어서, '보이지 않았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NASA라는 배경 속, 인종과 성별의 장벽
NASA는 과학과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기관이지만, 당시의 조직문화 역시 사회의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흑인 여성은 백인 남성 중심의 조직 내에서 철저히 보조적이고 소외된 역할을 맡았고, 이들의 의견은 회의석상에서 고려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히든피겨스의 세 여성은 이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인종차별을 고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변화의 계기를 만든 인물들을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노력과 실력을 통해 조직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변화는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NASA라는 전문 조직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여성과 소수자의 참여가 단지 '도와주는 역할'이 아닌 '필수적인 인력'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이며, 특히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서 여전히 소외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영화의 메시지
히든피겨스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특히 인종, 성별, 출신 배경 등으로 차별받는 이들에게 ‘당신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최근 몇 년 간 '다양성'과 '포용'은 사회 전반에서 주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조직과 사회 시스템은 완전히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든피겨스가 보여주는 ‘실력 + 용기 + 연대’라는 세 요소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도, 흑인만을 위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자리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입니다.
히든피겨스는 단순한 전기 영화나 여성 헌정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실력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장벽을 마주했던 이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우리 사회 속 숨겨진 편견과 장벽을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히든피겨스를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시청해보세요. 그리고 이미 보신 분이라면, 이번엔 ‘그 당시 그들의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해보시길 바랍니다.